최지영(세월호 참사 희생자 권순범 엄마) 이제 화장품 영업도 해보고 이것저것 하다가 이제 2013년도에 그동안에 애들 다 키워놨으니까 오는 손님 받자 (예전엔 손님을) 내가 찾아다녔지만 이제는 오는 손님 받으면서 살자 그래가지고 미용실을 차리게 됐고. 그래서 운영을 하고 하다가 2014년도에 참사가 일어나 버리고 그러니까 1년 만에 참사가 일어난 거야. 그때는 내가 미용실을 직접 차려가지고 조그맣게 크게는 못하고 조그맣게 차려서 시작을 했어요 그래도 뭐 많은 손님은 없었어도 꾸준하게 왔던 것 같고 여기 안산에 와서도 마찬가지로 일단 한 사람 오면 최선을 다해서 하니까 예약 손님도 많았고 내가 마사지도 해가지고 예약 손님 받아서 마사지도 하고 미용실도 하고 머리도 하고 이렇게 했어요. 마지막, 내 인생의 마지막 일이었으니까 마지막으로 여기서 내가 몸을 담아야지 이제 마지막까지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해야 되겠다 하고 차린 건데 결국은 못 했지 나한테 하지 말라는 소린가 어쩐가.
박정화(세월호 참사 희생자 조은정 엄마) 아침에 아이들 학교 보내놓고 이제 10시에 출근해야 되니까, 내 가게니까 아침에 내가 일찍 열든 애들 보내놓고 늦게 문 열어놓고 올라가 갖고 집 청소해 놓고 막 내려오고 우리는 건물 1층이 미용실이었고 3층이 우리 집이었었거든요. 그러니까 너무 편했지. 애들 학교 보내놓고 애들 오면은 미용실 들렸다가 “엄마 나 왔어” 하고 올라가고 그런 상황이었고. 우리 딸하고 아들이 학교 갔다 오면은 와서 막 이렇게 수건 접기도 하고 미용실 하면 ‘페이퍼지’라고 있어 종이 이렇게 뭉쳐져 있으면 자기들이 와서 앉아서 이렇게 펴주고 막 그러면 그거 해주면 내가 이제 용돈을 줘 그러니까 “엄마 나 이거 폈어” 그러니까 안 가 안 가고 서 있어 “왜 안 나가” 그러면 “엄마 내가 다 했으니까 알바비 줘” 막 이래요. 그러면 천 원씩 주고 막 그러면 그거 다 모아놓고 모아놨다가 엄마 생일 때 선물 사주고 막 이래 갖고 애들이 그런 거 보고 너무 이쁘더라고 그래서 용돈도 더 주게 되고. 손님 있을 때 이제 안 나가 “왜 안 나가?” “엄마 나 아이스크림 사 먹으니까 천 원만 줘” 그러면은 “손님 있으니까 갔다가 손님 가면 와” 그러면은 손님이 주니까 이제 그 재미가 또 생긴 거야 손님이 주니까. 손님이 있으면 들어와 그래갖고 “엄마 아이스크림 사 먹게 천 원만 줘” 그러면 “이따가 와 있다가 엄마 지금 바쁘니까” 그러면은 “엄마 천 원만 줘” 막 그러면 손님이 주는 거야 그러니까 그 재미가 들어가지고 계속 그러는 거야. 한 번은 되게 혼났지 한 번 뒤지게 맞았지. “한 번만 더 그러면 혼난다” 미용실 하면서 우리 아이들 다 컸지 뭐 그렇게 하면서.
문연옥(세월호 참사 희생자 이태민 엄마)
(손님들과 대화는) 거의 머리에 대해서 많이 나누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맨 처음에 오면은 잘 모르잖아요. 이 사람 성향도 그러고 그리고 저도 워낙 이렇게 말이 많은 스타일은 아니거든요. 그래서 그냥 뭐 이렇게 얘기하다가 아니면 TV에 뭐 흘러나온다든가 노래가 나온다든가 그러면 “언니 이 노래 알아요?” 뭐 이런 식으로. 근데 거의 대부분 미용실은 그러니까 나이가 있건 없건 나랑 비슷한 연배다 싶으면 다 언니야. 그렇게 불렀던 것 같아요. 계속 그러면서 거의 일상적인 얘기들 뭐 예를 들어서 요즘 비가 많이 왔다든가 그러면 “피해는 없었냐 어 비 많이 왔는데 괜찮았냐” 뭐 연배들이 거의 보면 이제 아줌마 손님들이 많죠. 아무래도 그 동네 안에서 하다 보니까는 젊은 아이들보다, 젊은 사람들은 거의 보면 시내로 많이 나가잖아요. 그 다음에 학생 아이들도 좀 있었고. 그럴 때는 보통 보면 아이들 얘기를 더 많이 하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