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인(이태원 참사 희생자 김의현 누나)
뭔가 부끄러워서 제 입으로 뭔가 “요리사입니다” 이렇게 하면 엄청 진짜 막 완전 프로페셔널하고 막 미슐랭 나가야 될 것 같고 이런 거라서 그냥 “주방에서 일합니다” 이렇게 말해요. 
(요리의) 매력을 얘기하자면 뭔가 매일같이 똑같은 거라도 항상 같게 나오지 않아서 그게 재미있어요. 그래서 어떤 날은 습해서, 불이 줄어서 내가 굽던 만큼 고기가 안 나올 때도 있고 그래서 딱 반 갈라보면은 내가 생각했던 거랑 다르고 근데 내가 불이 평소보다 약하니까 ‘어느 정도 이렇게 해서 이렇게 하면 되겠지?’ 해서 딱 했는데 내가 생각했던 대로 나왔어요. 그러면은 기분이 너무 좋아요. 희열이 너무 좋고 그리고 이렇게 그냥 재료 만지는 것 자체도 뭔가 진짜 아무것도 아닌 거, 물론 엄청 훌륭한 재료지만 거기서 이제 접시까지 나가는 거기에 제 손이 닿았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너무 좋고. 그러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공정에 제 손이 다 들어간 거니까 그것도 좋고. 돌아온 접시 비어 있으면 그것도 기분 좋고. 그냥 다 좋아요. 다 좋은 것 같아요. 재밌어요.

제가 계획 안 세우는 스타일이거든요. 근데 사무직을 하다가 너무 재미가 없는 거예요. 지루한 거예요. 뭐 모든 일이 재미가 있을 수는 없지만 계속 앉아서 뭔가를 하는 게 저한테는 안 맞는다고 생각이 들어서 그래서 진짜 계획 없이 그냥 그만두고 진짜 그만둔다고 얘기하고 회사에 그러고 나서 엄마한테도 얘기했어요. “나 회사 그만둔다고 얘기했어” 이렇게 하고 그냥 그만둔 거예요. 그러고 나서 잠깐 그냥 알바 집 앞에 집 근처에 있는 맥도날드에서 알바하다가 거기서 만난 친구랑 호주 워킹홀리데이 얘기를 하다가 “어 그럼 우리 같이 갈래?” 이렇게 해가지고 그 같이 갔던 친구는 1년도 안 있다가 그냥 갔어요. 자기랑 너무 안 맞는 것 같다고 호주 생활이. 그래서 “어 알겠어 가” 이러고 하고 나서 저는 1년 있고 더 있고 싶다 이래가지고 그러면 이제 더 있으려면 호주에서 비자를 취득해야 되잖아요. 그래서 이제 학교를 다녀야겠다 했는데 학교를 다니려면 보통 요리나 간호 이런 걸 해요 영주권을 따려면. 그래서 ‘나는 요리해 볼까’ 하고 요리학교 등록 했는데 너무 재밌는 거예요. 그래서 ‘아 너무 재밌다’ 이렇게 해서 이제 학교 다니면서 이제 다니면서 실습도 나가고 이렇게 하니까 일도 너무 재밌고. 내가 몰랐던 거 이렇게 배우는 거에 되게 재미가 많이 느껴져서 그래서 이제 거기서부터 계속 쭉 이렇게 하게 된 거예요.

그때는 의현이가 있었으니까 만약에 제가 외동이었으면 못 갔을 것 같아요. 외국을 어딜 가는 거를 못 했을 것 같아요. 차라리 뭐 한국에 지방이나 어딜 가면은 그래도 (엄마한테) 자주 갈 수 있으니까. 그때는 의현이가 있었으니까 간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해요. 근데 엄마가 지금은 안 그러는데 초반에는 “그냥 다시 호주 가라 호주 가서 호주 남자 만나서 거기서 살아라” 막 이러는데 뭔가 좀 불안해요. 그냥 엄마 혼자 냅두는 게 그래서. 요즘도 가끔 얘기하긴 해요. 호주 가서 살라고. 갑자기 그 일 때문에 들어오게 되니까 제가 거기서 쌓아온 거를 다 버리고 온 거잖아요. 그래서 그것 때문에 좀 속상한 것 같아요. 그러니까 여기 나머지는 엄마가 혼자 알아서 할 테니까, 유가족 활동이나 그런 거는 엄마가 할 테니까 가라고 이렇게 하는데 별로 그러고 싶지 않아요. 그만큼 그렇게 미련이 남지도 않았고. 그냥 여기 와서 다시 뭐 어떻게 살면 살지 하면서 그냥 사는 거죠.

근데 한 1년 1주기 지나고 1년 반  2주기 쯤 되니까 그래도 좀 그랬던 게 슬프긴 하지만 그 슬픔이 좀 잔잔해져서 그래도 좀 괜찮아졌던 것 같아요. 그전에는 진짜 업 앤 다운이 너무 심해서 저도 저를 어떻게 할 줄 모르겠는 거예요. 내가 무슨 일을 벌일지도 모르겠고 그래서 보통 집에만 집에만 있고. 아니면 이모나 의현이 친구들이 연락해가지고 저랑 엄마 데리고 가서 밥 먹고 그랬거든요. 그때만 나가고 아니면 그냥 보통 집에 있고 엄마랑 있거나 그랬었던 것 같아요.
집에서 가만히 있었던 거는 그냥 진짜 나를 위한 거고 밖에 나가는 거는 의현이 누나로서 약간 나가는 것 같아요. 엄마도 (의현이) 엄마로서 이렇게 나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처음에는 ‘유가족 모인다’ 이것도 엄마가 찾아서 같이 가자고 해서 갔던 거거든요 서울에. 그러다가 엄마가 뭐 이제 ‘내가 의현이 엄마로서 할 수 있는 거는 다 할 거다’ 이렇게 하니까 그러면 또 저는 같이 따라가고. 엄마가 걱정되니까 가다가 길 잃어버리고 이럴까 봐. 
그래서 같이 가다가 우연히 외신 기자회견을 한다고 해서 그 얘기를 들어서 ‘아 그럼 뭐 어른들이 잘하겠구나’ 했는데 들어보니까 외신 기자들은 딱 타임라인이 정해져 있어서 1인당 정해진 시간 안에 얘기를 안 하면 그냥 바로 자르고 간다는 거예요. 그러면 어머님들 아버님들이 하고 싶은 말이 그들에게 잘 전달될까? 그게 너무 걱정이 된 거죠. 그러면 ‘이거 내가 해야겠다’ 이렇게 생각이 들어서 그래서 “제가 하겠습니다” 이렇게 하고 혼자 밤새 계속 이렇게 컴퓨터 치면서 ‘뭘 얘기해야 되지?’ 아무리 해도 양이 안 줄어드는 거예요. 그래서 안 되겠다 하면서 그냥 프린트해서 계속 읽는 연습을 했어요. 혼자 시간 재놓고 혼자 “(영어로) 왈라라 라라라” 한 거예요 그래서 최대한 빨리 얘기할 수 있는 만큼의 양을 이렇게 압축시킨 다음에 기자들 온다니까 또 그걸 프린트해서 영문이랑 한글로 써놓은 걸 두 개씩 해가지고 묶어서 가져갔어요. 가져가서 이제 올라가기 전에 기자들한테 다 나눠줬죠. 제가 양을 줄이기 전에 그냥 꽉 엄청 길게 쓴 거 내가 하고 싶은 말 다 적은 것을 나눠주고 올라갔는데 엄마가 “마스크 절대 벗지 마” 이러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응 알겠어” 이렇게 하면서 올라가서 이제 뭐 유가족 누구누구다 하는데 ‘에이 모르겠다 마스크 쓰면 말소리도 잘 안 들리니까’ 그래서 마스크 벗고 영어로 막 읽었죠. 근데 생각보다 그렇게 시간이 안 타이트하더라고요. 통역하는 시간 잘 해주더라고요. 그렇게 하고 이제 끝나고 내려와서 엄마가 “마스크 왜 벗었어?” 하면서  “그냥 뭐 어때?” 그걸 계기로 이제 활동을 하나 두 개씩 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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